Lupus in Korea?



보드게임 관련 잡설을 늘어놓던, 미디어몹에 방치되어 있는 블로그에서 오랜만에 본 글을 가져옵니다.

거기 있는 글은 다 제 글이니 저작권 문제는 없습니다 :)

읽어볼까요?

Lupus in Tabula.

한적한 타불라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늑대인간(warewolf, Lupus)이 나타났습니다.

밤마다 한 사람씩 늑대인간에게 살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잔인한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치를 떱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자경단을 조직해서 마을 안 늑대를 소탕하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늑대인간은 낮이면 시민(Civilian)인 척 하고 천연덕스럽게 마을 회의에 참석해서 여론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모두 잠든 밤이면 그 마각을 드러내서 또 한 사람의 희생자를 냅니다.

이 마을의 점성술사(Seer)는 밤마다 점을 쳐서 누가 늑대이고 누가 시민인지 가려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늑대가 두렵기 때문에 정체를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이 마을에는 영매(Medium)도 살고 있어서 낮에 자경단의 회의를 통해 늑대로 지목되어 화형당한 사람이 늑대인지 시민인지 밤에 꿈으로 계시를 얻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깊이 늑대에게 매료된 자, 즉 미친 인간(possessed)이 등장했습니다. 점성술사에게는 시민으로 간주되는 이 사람, 하지만 늑대를 위해 마을 회의에서 분탕질을 치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정작 자신이 늑대에게 잡아먹힐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은 채...

물론 늑대는 이 모든 역학관계를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눈치를 살살 봐 가며 때로는 점성술사인 척, 때로는 영매인 척 마을 회의를 주도하며 밤에는 자신의 뱃속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지요.

Lupus in Tabula는 이런 배경설정을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흔히들 마피아 게임이라 부르는 게임과 많이 닮아 있지요. 요새 이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에 빠져듭니다.

점성술사를, 혹은 영매를 늑대로 몰아붙이는 진짜 늑대들. 그런 늑대들에 환호하는 미친 인간들. 그 사이에서 조작된 여론에 놀아나는 시민들. 그리고 죽어가는 점성술사와 영매...

그대로 한국의 정치판입니다. 차떼기로 분탕질을 치고 다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미친 인간들이 마치 국민을 대표하는 여론인 양 판을 치고, 그 틈바구니에서 옳은 말을 하는 자들은 순간의 말실수 하나로 오히려 늑대로 몰려 죽어갑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Lupus in Tabula에서는 늑대를 모두 잡아 죽여야 시민의 승리로 끝납니다. 미친 인간 정도야 내버려둬도 되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미친 인간은 '닥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한 표가 늑대를 잡아죽일 수도, 애꿎은 시민을 늑대로 몰아 죽일 수도, 심지어는 점성술사나 영매에게 억울한 죽음을 선사할 수도 있습니다.



저 포스팅은 3. 12. 쿠데타로 기억되는 사건을 보며 열받아서 즉흥적으로 써내려간 거였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미친 인간들이 여론입네 설치고 있는 건 변하지 않았군요.

아직도 늑대가 구원자입네 하고 감언이설로 발라대는 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한숨만 나옵니다...

덧. 그래도 한 가지는 변했군요. 제 아이콘이 포크에서 컴퍼스로 변했습니다.
포크는 그냥 양민들, 컴퍼스는 게임 중 단 두 사람 등장하는 비밀조직의 결사원.
그들은 마을의 다른 사람들의 정체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답니다.
by hislove 2005. 9. 12. 12:36